재미가 없다.

K리그 팬들은 오래전부터 ‘K리그는 재미없다’라는 대중들의 편견에 맞서는 것에 이골이 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K리그 팬들 사이에서마저도 ‘K리그 재미없다’라는 푸념 섞인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습니다.

팬들이 경기가 재미없다고 느끼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 중 어떤 것은 연맹이나 구단이 나서서 바꿔보려 해도 바꿀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일 수 있고, 어떤 것은 해결할 수는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오랜 기간 노력해야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음에도 의지의 부재로 ‘하지 않음’으로써 자초한 문제들도 있습니다. 이젠 리그 팬들마저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감독 선임 문제가 바로 그렇습니다.

프로축구는 기본적으로 경기장을 찾은 관객에게 축구라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산업입니다. 여기에는 경기장 시설부터 응원 문화까지 여러 측면의 고객 경험이 포함되지만, 기본적으로는 ‘축구’가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 핵심 콘텐츠의 질을 좌우할 수 있는, 고객 만족을 좌우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을 가진 사람은 마케팅 팀도, 스타 플레이어도 아닌 감독입니다.

스타 선수는 단기적으로 관중들의 이목을 확 사로잡을 수는 있지만, 경기에 나서면 11명 중 1명일 뿐, 그 1명이 번뜩인다 한들 시즌 내내 고객들에게 ‘재미있는 경기’를 선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감독은 가능합니다.

경기의 흥미도는 경기 수준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되었다는 바르셀로나나 첼시 같은 팀이라고 해도 재미없는 경기 스타일을 추구하는 감독이 부임하면 재미없는 경기를 하게 되는 것이 축구입니다. 이는 반대로, 세계적인 수준의 리그가 아니라고 해도 특색과 개성이 있고 재미있는 경기를 추구하는 있는 감독들이 서로 치고받으면 충분히 소비자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감독이 팀의 성적을 좌우한다는 것 역시 따로 말할 것도 없는 부분입니다. 정리하면, 한 구단의 감독이라는 자리는 프로 구단의 존재 목적인 ‘성적’과 ‘흥행’에 구단 내의 어떠한 존재보다도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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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 시즌(추춘제 리그는 2016-17 시즌, 춘추제 리그는 2017 시즌)의 특정 시점 기준. ⓒ김대령의 아시아 축구

아시아 주요 리그 중 외국인 감독이 없는 유일한 리그

외국인 감독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능력 있는 외국인 감독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능력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외국인 감독은 리그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다양성을 불어넣습니다. 완전히 다른 시스템 안에서 선수로서 생활하고 지도자로 커왔을 외국인 감독은 훈련 방식부터 선수들과의 소통 방식까지 국내 지도자들과는 다르고(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이는 선수들에게, 코칭 스태프들에게, 그리고 가끔은 다른 감독들에게까지도 경기 내·외적으로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과거 FC서울의 세뇰 귀네슈 감독처럼 리그 운영 자체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구시대적 제도의 선진화를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외국인 감독이 많을수록 이런 다양성은 증대되고, 이러한 요소들 하나하나가 결국 리그 전반의 흥미 요소가 됩니다.

그러나 외국인 감독이 단 1명도 없는 현 K리그에선 이런 측면에서의 다양성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는 아시아의 어떤 리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국제적인 스포츠인 축구계에서는 다소 기이한 현상입니다. 폐쇄적인 이미지를 가진 이란 리그나 우즈베키스탄 리그에도 여러 외국인 감독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대한민국의 ‘외국인 감독 비율 0%’라는 수치에선 신기함까지 느껴질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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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지상파 광고에까지 출연했던 K리그 감독들 (좌-‘SK텔링크 00700’ 광고 / 우 ‘온세통신 국제전화 00365’ 광고)

외국인 감독이 없는 것은 외국인 감독 배척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K리그에 외국인 감독이 없는 것이 K리그 팀들이 외국인 감독을 일부러 배척해서일까요? 언뜻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내 감독 선임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단순히 배척의 문제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K리그의 적지 않은 구단들은 외국인이냐 내국인이냐를 떠나서 애초에 감독 선임에 능력과 개성, 스타일, 철학 등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더더군다나 수장을 임명하는 작업은 어느 분야에서든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선별 작업을 거쳐도 항상 실패의 리스크를 안고 있는 작업입니다. 하지만 K리그에서의 감독 인선 과정은 큰 일을 벌이고 싶지 않다는 듯 구단 윗선의 불명확한 기준 하에 쉽게 쉽게 처리되는 일이 빈번합니다. 애초에 외국인 감독 부재의 근본적인 이유는 사실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어떤 구단은 우선 순위에 능력과는 상관 없는 ‘연고지 지역 출신 여부’를 두고 감독을 선임하다가 결국 성적 부진이 이어지면서 팬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고, 어떤 구단은 시즌 막바지 순위 경쟁이 한창인 기간에 차기 감독 인선을 질질 끌다가 대행을 다른 대행으로 갈아치우는 웃지 못할 일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바지 감독 파문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안타까운 우리 리그의 자화상입니다.

현 K리그 클래식 12개 구단의 감독들 중 무려 75%에 이르는 8명이 현 구단이 본인의 지도자 커리어에서 첫 감독 구단인 감독들이라는 통계에서도 감독 선임에 가장 중요한 부분인 능력, 경력에 대한 검증 과정이 얼마나 무시되고 있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감독 경험이 없는 감독을 선임하는 것은 위험성이 큰 모험입니다. 가끔 그 모험을 통해 ‘대박’이 터질 때도 있으나, 아시아 최강 중 하나라는 대한민국의 프로 1부 리그에 소속된 팀들이 제대로 된 검증이 불가능한 ‘초보 감독’들을 선임하는 행태는 결코 프로 리그 전체로 봤을 때 바람직한 현상이 아닙니다.

무사안일주의에서 나온 ‘대행 승격’의 유행

K리그에서 너무 쉽게 볼 수 있는 장기 ‘감독대행 체제’ 역시 감독 선임에 대한 경시 풍토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급하니 수석 코치에게 감독을 잠시 맡기고, 잘하면 승진시키고 아니면 말고’에 그치는 이러한 현상은 결국 어려운 길보다 쉬운 길을 찾아 쉽게 쉽게 가고자 하는 구단들의 무사안일주의식 운영의 일환, 그 이상으로 보기 힘듭니다.

K리그 클래식의 12개 팀 중 5개 팀의 감독이 ‘대행’ 꼬리표를 달고 있다가 팀을 안정화 시킨 것을 인정받아 정식 감독으로 승격한 인물들입니다. 그 이전에도 많은 감독들이 감독 대행을 거쳐 정식 감독으로 올랐습니다.

하지만 성적 부진으로 인해 감독을 경질한 팀이 선수들의 심리적 결집과 팀 분위기의 전환 등 차기 사령탑의 능력과 관계없는 이유로 일시적으로 급반등하는 현상은 축구계에서는 흔한 일이라는 점에서 ‘대행의 돌풍’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수많은 감독들이 감독 대행에서의 성과를 인정받아 정식 감독으로 승격했지만, 현재 K리그 챌린지를 포함한 22개 팀에서 감독 대행을 거쳐 감독으로 승격한 인물들 중 현재까지 살아남은 감독(재임 기간 1년 이상 기준)은 남기일 단 1명뿐입니다.

자초한 ‘재미없는 리그’ 

국내 축구 커뮤니티들에는 ‘경기장에 친구를 데려가기가 창피하다’라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지금 부진한 1, 2개 팀 팬들의 부진에 대한 성토가 아닙니다.

‘재미없는 경기’는 K리그 전체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프로축구연맹은 골이 많이 나는 리그를 만들겠다며 제도까지 뜯어고쳐 순위 결정 방식을 다득점 우선으로 바꾸는 1차원 적인 제도를 내놓고, 후반전 ‘추가시간 퍼주기’를 대안이라며 시행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말 그대로 실정(失政)입니다.

그러나 ‘축구’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한다면 리그를 보다 재미있게 만드는 것에는 생각보다 더 쉬운 길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구단들이 좋은 감독 선임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평시에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언제라도 좋은 감독을 물색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리스트를 유지하고, 상황이 닥치면 후보군 선별 과정을 체계화하고, 감독을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외국인 감독 이야기가 나오면 따라 나오는 것이 비용의 문제입니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감독은 성적은 물론 흥행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구단 측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자리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감독 선임에 돈을 아끼는 것은 삼겹살만을 파는 집이 삼겹살에 돈을 아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많은 구단이 매 시즌마다 제대로 쓰지도 못할 외국인 선수를 데려와 다시 되돌려 보내는 것에 억 대의 돈을 지출하고, 일부 구단들은 쓸데없이 비대한 스쿼드를 유지하며 인건비를 낭비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좋은 감독을 찾을 여력이 없다’는 이유는 그저 ‘의지가 없다’라는 말 정도로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K리그보다도 재정 규모가 훨씬 적은 여러 리그에도 능력 있는 외국인 감독은 여럿 존재합니다.

재미있는 리그, 관중이 많이 찾는 리그가 되기 위해서는 연맹의 마케팅도 중요하고, 중계 기술의 발전도 중요합니다. 응원 문화도 중요하고, 지역 공헌 활동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팬들은 축구장에 축구를 보러 간다’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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